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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에 당시 국정홍보처의 웹메일시스템 입찰건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2006/07/27 - [기술 & 트렌드] - 35억 6천만원짜리 웹메일시스템?

나는 오랜 기간 웹메일시스템. 더 정확하게는 웹메일 솔루션을 만들고 판매하는 국내 대표기업에 근무했었다. 2006년 당시에는 이미 그 회사를 떠난 후였지만, 웹메일이나 메일시스템 등 메시징 시스템 관련 기사가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잘 아는 분야라서 그런 것도 있고, 메시징 시스템의 트렌드가 현재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직면한 과제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트렌드와 기술의 흐름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뉴스 기사를 읽다가 전에 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특정업체의 국정홍보처 웹메일시스템 선정의혹이 밝혀졌다. 아직은 혐의수준이지만 제기된 의혹들과 드러난 사실들은 예상대로였다.

[뉴시스]검찰, '뇌물수수' 前국정홍보처 직원 구속

뉴스 결과를 놓고보면, 왜 특정기업의 웹메일 솔루션이 납품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댓가성 뇌물과 이에 따른 특혜 사업이 특정기업에 또 다시 주어졌는지를 뻔하게 알 수 있다.

관심이 있어서 계속 살펴보았는데, 2007년 국감에서 제기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국정홍보처에서는 폭로자와 이를 발표한 자에 대해 법적대응까지 고려한다는 발언도 나왔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검찰이 본격적으로 납품비리 의혹을 수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제 언론에 검찰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디어투데이]'홍보처 발주사업 비리 의혹' 집중제기 (2007.10.26)
[KBS]검찰, 국정홍보처 ‘납품비리’ 의혹 수사 (2009.1.9)

35억 6천만원의 혈세를 들여 공무원들에게 웹메일 계정을 나누어주겠다는 좋은 의도였지만, 그 과정은 조금만 생각만 해봐도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IT 사업 추진 방법의 후진성과 아직도 기술과 실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국가사업을 따내는 기업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드러난 이번 건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여러곳에서 존재하고 있다. 웹메일시스템 업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IT사업 전반에 걸쳐 공공기관 사업에 이런 일들이 많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는 있겠지만, 여전히 이런 뇌물과 특혜 시스템은 존재하고 있다. 특히 사업비가 큰 경우에는 뇌물의 액수가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업계에 있는 분들, 특히 공공기관 영업을 하는 분들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큰 문제를 일으키거나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에 소프트웨어 솔루션 영업을 할 때만 해도 댓가성 금품요구가 종종 있었다. 사업비가 크면 클수록 바라는 요구가 크거나 많았고, 업체의 이익에서 떼주거나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소위 말하는 '뇌물'이 형성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그런 사업건을 따낼 수가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일반적으로 부서에서 사용할 기기(노트북, PC 등 디지털 기기)구입 요청이 많다고 한다. 회식비용 처리 요구 등도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돈이 아닌 다른 물품에 의한 뇌물의 형식이라면 특정 공무원의 비리라는 측면보다는 팀이나 조직의 비리 또는 그들이 말하는 관행으로 볼 수 있다.

2006/08/06 - [기술 & 트렌드] - '접대'는 '상식'이 기준이다

예전에 나도 솔루션 영업을 했었기 때문에 특혜를 노린 경쟁사들의 치열한 로비전을 많이 목격했었다. 특히, 경쟁사가 기술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을 경우 고객에게 금품이나 향응 등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먹혀들었었다.

이런 일로 사업권을 못따내거나 하면 그때마다 내가 속해있던 회사는 자책하고 실망하기 일수였다. 일각에서는 영업의 세계를 잘 모른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납품은 탈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어서 경쟁사와 같은 영업방식은 하지 않았다.

뇌물로 사업을 따내면 안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일단, 뇌물로 사업건을 따내면 그 사업자체가 잘못되어도 공공기관이 업체에게 시정요구나 개선요구 때에 따라서는 납품철회 등이 쉽지 않다. 즉, 이미 결점을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에 '갑'이 '을'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 대부분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이거나 필요없이 비용이 지출이 되기 때문에 국민세금의 낭비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납품사가 시장가보다 낮게 책정하고, 이익을 낮추는 형태를 취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실납품 또는 시장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만 한다. 이래저래 비용의 과다지출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더 좋은 제품을 가진 기업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다. 오로지 비정상적인 영업력만으로 사업건을 따내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제품 자체보다는 로비 영업만 잘 하는 기업들이 득세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솔루션을 만드는 IT기업들의 의욕만 꺾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IT 사업건 수주에 투명성이 높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관행'은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업건으로 부서 회식을 하거나 노트북 등 집기를 구입하는 사례는 아직도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중에는 항목이 뚜렷하지 않아서 사업과 관련없는 집기를 (비용을 추가해 주고) 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업체 비용으로 구입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더 많다고 한다.

IT 솔루션을 영업하는 사람들은 사전작업, 즉 '스펙작업'을 가장 선호한다. 자사의 제품스펙이 가장 근접하도록 사전에 수주기관과 협의하는 것을 말하는데, 해외에서는 '로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사 제품의 특징을 강하게 어필하는 영업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댓가를 약속하거나 특혜를 요구한다면 정당한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공무원들도 그런 유혹을 당당히 뿌리쳐야 하고 업계 영업 담당자들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

내가 웹메일 솔루션 영업을 할 때 대부분의 공공기관 고객들은 투명한 업무처리를 하는 경우였다. 개중에는 아닌 고객도 있었지만, 업무에 충실한 공무원들이 훨씬 많았다.

업체유착의혹을 염려하여 제품선정 전까지는 찾아오지도 못하게 하는 공무원도 있었으며, 사무실에 음료수 사오는 것도 금지하거나, 방문한 영업자에게 손님이라며 사비를 들여 밥을 사주는 공무원들도 많았다. 다수는 그렇게 선량한 공무원들이었다. 아마도 지금은 그런 공무원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는 여전히 지저분한 뒷거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쉽고 편리하며 얻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은점보다는 나쁜점이 훨씬 많다.

업계에서 지저분한 로비로 명성을 날리던 회사는 언젠가는 망하게 되어있다. 뇌물의 힘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며, 결국 피해를 입고나서야 뇌물의 폐해를 쓰라리게 경험하게 되고, 결국 그런 업체와는 다시 계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라는 것이 특정사안에 집중되면 마녀사냥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 사건처럼 다수의 선량한 공무원, 다수의 IT 영업맨들이 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뇌물도 영업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기업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뇌물이 독약이라는 것은 먹어본 사람들은 잘 알것이다. 작은 이익 때문에 큰 것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떳떳하지 못하게 된다.

뇌물을 주려는 노력도, 받으려는 추호의 마음도 가져서는 안된다. 특히 관행이라 할지라도 우리 IT 업계 자체를 망가뜨리는 주범중의 하나는 뇌물이다.

* 이 글은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분들에게만 공개하고 싶어서 발행은 하지 않았다. 처음엔 포스팅 자체에 대해 고민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심정에서 공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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